1. 엉터리 성경해석 - 창조론 1) 엉터리 성경해석 신천지는 어떤 곳인가? 과연 성경대로 믿는 곳인가? 그들은 창세기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이 아니며, 창조기사조차도 모두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가르쳤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해석을 정당화시키기 위함이다. 신천지가 실제로 미혹하는 실례를 들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창 3:14)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흙을 먹을 것이라는 저주를 하셨다. 그러나 신천지는 뱀은 실제로 흙을 먹지 않기 때문에 상징적인 비유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는 ‘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을 비유한 것으로서, 오늘날의 ‘목사’를 뜻한다고 가르친다. 마태복음 23:33에서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뱀과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비판하셨다는 성경을 인용한다. 즉 창세기 3:14에서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곧 기독교의 목사가 교인들을 지옥에 빠트리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미 비유풀이와 이원론에 빠진 교인들은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재미있다고 반응하며 미혹된다. 그렇다면 뱀이 흙을 먹을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흙을 먹는다’는 표현은 주로 비하적인 의미로서, 저주와 패배, 징계를 뜻하는 관용적인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며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는 구절이 그 뜻을 반영하는데, 레위기 11:41-44는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가증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욥 30:3)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아파르: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은 땅바닥으로 번역)을 핥을 것이며” (시 72:9) “그들이 뱀처럼 티끌(아파르, 흙)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미 7:17)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사 49:23) 2) 창세기의 창조기사 신천지의 주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이며, 모두 기독교와 이만희가 만든 신천지장막교회에 대한 비유라는 것이다. 신천지는 단어 비유풀이를 통하여 하늘은 ‘목자 혹은 장막’으로 해석하고, 땅은 ‘성도’로, 물(바다)은 ‘세상’으로 해석한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天地)는 ‘기독교의 목자와 성도’라는 것이다. 그 기독교가 타락하고 범죄하여 흑암과 혼돈이 왔기 때문에 성령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셨다는 것이다. - 땅은 흙으로 된 사람을, 하늘은 지도자와 장막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 선민의 장막에 선민들과 함께하시던 하나님이 떠나가시니 공허요 빛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새같이 날아 왔다가 떠나갔기 때문에 그 장막은 흑암한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2) - 뿐만 아니라 계시록 17장에서도 많은 물(바다)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하셨으니 본문의 수면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 하늘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한 후 빛을 찾아 이 세상에 두루 운행하셨다는 뜻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43) 너무나 황당한 해석이지만, 이미 비유풀이에 빠진 성도들에게는 감추어진 영적비밀이라고 믿게 된다. 신천지가 성경을 비유풀이로 가르치는 이유와 목적은 이와 같이 성경을 마음대로 다른 뜻으로 바꾸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느니라”(창 1:2) 본문에 대해서 이만희 교주는 성령이 빛(이만희)을 찾아 세상을 운행하였다고 해석한다. 신천지는 바다가 세상이라고 비유되므로 물도 세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물이라는 단어가 간혹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물’이라는 단어 대신에 ‘세상’을 대입하여 보면 신천지의 비유풀이가 얼마나 황당한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운행한다’에 대해서 이만희는 아마 모터보트나 수상비행기를 연상하는 모양인데, 히브리어 ‘라하프’는 그런 뜻이 아니라, ‘알을 품다, 날개치다, 흔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동번역은 ‘휘돌고 있었다’로, 표준새번역은 “움직이고 계셨다”로 번역하였다. 즉 ‘운행하다’를 뜻하는 ‘라하프’는 마치 새가 보금자리에서 알을 품으며 날개짓을 하는 ‘작은 움직임’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창 1:2을 포함하여 세 번이 사용되었는데 신 32:11에서는 독수리가 날개를 “너풀거리다”로 사용되었으며, 렘 23:9에서는 “뼈가 떨린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계속 활동하셨다는 것은 독수리가 알을 품는 것을 연상시키며, 즉 성령께서 생명의 잉태를 위하여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는 뜻이다. 이만희 교주는 ‘운행한다’는 단어를 성령께서 이만희를 찾아 온 세상을 헤메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심각한 신격모독이다. 또 이만희는 창 1:2의 ‘혼돈’에 대해서 “두가지 이상의 교리나 사상이 혼합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혼돈’을 가르키는 히브리어 ‘토후’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영어로 ‘without form’ 혹은 ‘formless’ 로 번역되며 ‘형태가 없음’을 뜻한다. 또한 이만희는 ‘공허’에 대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들이 떠나간 상태”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히브리어 ‘보후’는 ‘비어있다’는 뜻으로, 영어로는 void로 번역된다. 문자적으로나 어원적으로 ‘혼돈과 공허’는 함께 사용되어 "아직 형태가 없는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며, "아직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해석된다. 그래서 이러한 상태를 하나님은 6일 동안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으로 창조를 진행하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거할 수 있도록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성경에서 ‘혼돈’(토후)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은 19곳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광야, 사막, 거친들’이라는 의미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장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 ‘헛된 일’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삼상 12:21, 사 29:21, 사 40:23, 사 41:29, 사 44:9) 그 이유는 ‘공허’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허공(욥 26:7), 빈 것(사 40:7), 무익(사 49:4)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또 ‘공허’(보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오직 세 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혼돈’과 함께 사용되었다.(창 1:2, 사 34:11, 렘 4:23) ‘성도와 천국’이라는 책에서 이만희교주가 쓴 내용을 보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이들의 궁색한 변명에 대해서 쓴 웃음만 나온다. 성경의 저자들이 한글로 성경을 썼는가? 다른 번역성경이나 영어성경, 특히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경을 보면 신천지의 주장이 황당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이만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기록된 바 그 예언이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말씀이라면,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대한민국 사람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정확하게 기록했을 터이고, 또한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성도라면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이만희, 성도와 천국, 9쪽)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1절), 3절에서는 빛을 지으셨다. 빛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 전에 어두움만이 있었다는(빛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천지는 빛이 떠났으므로 흑암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창 1:2의 ‘흑암’은 ‘빛이 떠나간 상태’가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은 1장2절에서 먼저 흑암이 있었고, 3절에서 빛을 지으셨다고 기록한다. 성경에서 ‘어두움’(darkness)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악 혹은 사단을 비유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경은 문맥을 통하여 해석을 하여야 하며, 창 1:2-4의 빛과 어두움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주께서 흑암을 지으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어두움’을 나쁜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시 104:20)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만일 어두움이 사단과 악이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할 수 없다.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8) 물론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비유풀이는 이것 외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저울, 지팡이, 불, 향로, 빛, 등대, 물, 샘, 강, 짐승, 머리, 뿔, 꼬리, 피, 포도주, 감람유, 산, 인과 나팔, 돌과 우상, 생물과 바람, 부활, 신랑, 예루살렘, 이스라엘등등.... 이러한 단어풀이는 요한계시록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예비적인 학습으로 사용되어진다. 필자는 지면상 모든 비유풀이를 비판할 수 없으므로 초등교육에서 가르치는 몇가지의 중요한 비유풀이만을 앞의 2편과 본문에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성경해석은 이만희가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며, 실상의 비밀을 알게 된 것도 아니라, 많은 이단들이 그동안 사용해 왔던 전용수법이다. 특히 통일교나 정명석집단, 전도관이나 장막성전, 하나님의 교회(안증회)등 대부분의 이단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다. 특히 비유풀이, 보혜사, 이긴 자, 감람나무, 두 증인등의 교리는 전도관 출신에게 모두 발견된다. 2. 계시록이 봉하여진 비밀인가? 많은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이 비밀로 인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말세가 되면 그 이단단체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성경의 비밀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단들은 성경이 모두 비유와 짝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계시록의 비밀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신천지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 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계시록 10장에 기록한 열린 책을 받아먹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아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소성 받아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이만희, 요한계시록의 실상, 14쪽) 1) 계시록이 봉하여 졌다는 주장 :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1-5) 신천지에서는 위에서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이 바로 계시록이라는 주장하며, 계시록이 봉하여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시록 5장의 일곱인으로 봉하여진 책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다. 계시록 5장은 구약의 에스겔을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겔 2:9-10) 계시록 5장1절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장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시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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