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다섯살 수하를 착한아이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보여주던 착한일 스티커판..
작년 11월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스티커를 다 모으면 받고 싶은 선물을 하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스티커 모으기에 매진하던 수하
각 항목별로 칸이 대여섯개쯤 남았을때, 수하에게 물었습니다.
"수하야, 스티커 다 모으면 무슨 선물 받고 싶어?"
잠깐 생각하더니 '성경책'이라고 대답합니다.
할머니집에서 텔레비젼 볼때마다 선전에 나오는 장난감 이것저것 나중에 사달라고 얘기하더니, 막상 기회가 생기니까 성경책이랍니다.
"수하야, 성경책? 성경책이 갖고 싶어? 왜?" 물었더니
"어~ 수하 성경책이 다 찢어졌잖아, 그러니까 성경책 갖고 싶어."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보니 세살때쯤 사준 유아용 그림성경책은 무게감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근 삼년을 수하손에서 놀더니 겉표지가 거의 뜯겨져 나가서 너덜너덜합니다. 물론 속은 말짱하지만, 유아 성경이라 내용도 너무 단순해서 아무래도 어린이용으로 하나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성경책을 먼저 생각한 딸이 기특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해서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수하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말썽을 부리기도 하고, 또 착한일을 하기도 하고, 또 속상하게 하기도 하고 그냥 여섯살 아이가 할 일들을 할 뿐인데, 엄마 마음만 급해졌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책을 빨리 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하루 세끼를 전부 맛있게 먹어야 붙여주던 맛있게 먹어요 스티커는 하루 한끼만 맛있게 먹어도 붙여주고, 정말 도움이 되었을때에만 붙여주던 즐겁게 도와요 스티커도 기저귀 가져다주기 같은 사소한 일을 했을때도 붙여주고... 결국 스티커를 남발하다가 그 주가 끝나기도 전에 저렇게 완성 해버렸습니다.
결국은 완성한 다음날 수하와 둘이 손잡고 두란노 서점에 가서 어린이용 성경책을 사왔단 얘기.
수하를 키우면서 하나님도 나를 보실때 이런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순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나에게 주시고 싶은 선물이 잔뜩 있는데, 내가 바로 하나님이 생각하고 계신, 준비하고 계신 그것을 구했을때 그런마음이지 않으실까..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엄마의 마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열왕기상 3:9-13>
수하는 요즘 순종훈련 중이라..
이제 새롭게 만들어질 수하의 착한일 스티커판에는 '부모님께 순종해요'라는 칸이 추가될 것입니다.
눈 앞의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는 더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훈련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시각과 또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또래 집단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아이와의 순종훈련은 부딪힘이 있는 매순간이 서로에게 힘겨운 싸움이라 익숙하고 당연한 몸에 익은 습관이 되기까지는 전쟁과도 같은 나날입니다.
생각해보니 이 전쟁은 나와 아이와의 싸움이 아니라, 순종함을 잃어버린 인간의 죄성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일례로 수하와 엄마가 암송도 열심히 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은 날에는 순종이 힘들지 않은 당연한 일인데, 며칠 암송을 거르거나 너무 바쁜 스케쥴에 밀려 하나님과 상관없는 생활을 할 때에는 무슨일로든 수하의 고집, 대부분은 고집을 위한 고집인 쓸데없는 고집과 부딪히게 됩니다.
순종훈련을 하면서 끊임없이 마음에 떠오르는 두가지 묵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라는 에베소서 말씀인데,
아이에게 순종을 요구할 때, 내가 이것을 '주안에서' 요구하는가? 라는 질문을 항상 아니, 거의 항상 하게 합니다.
거의 항상이라는 것은 때때로 수하의 고집에 부딪힐때, 너무 화가 나서 같이 막무가내로 나갈 때가 있는 내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은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도 '주안에서'라는 말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부모의 권위를 부모의 편의를 위해서 이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부모의 편의를 위해 잦은 빈도로 요구되는 순종은 결국 이 훈련의 빛을 바래게 할 것입니다.
두번째 묵상은 조금 생뚱맞은 것 같지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라는 역시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젊었던 한때에는 참으로 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녀를 평등하게 지으신 하나님이 아니던가.. 도무지 사도 바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역시 시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남성우월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순종훈련을 하면서 발견한 엄청난 사실. 하나님은 '여자들이여 남자들에게 복종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 순종은 여자가 아닌 아내들에게 요구되어지고 있다!
아이를 교육하다보면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럴때 아이를 이해시키는 방법은 직접 보여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아이에게 순종해라 순종해라 말해도 알리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순종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유사한 상황에서 아이도 엄마가 행동했던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경우 아이의 교육은 엄마가 주로 담당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것은 바담풍 하면서 바람풍하기를 바라는 격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2011년 수하, 로이 엄마의 목표는...
겸손한 사람, 순종하는 아내, 지혜로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