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는 것에는 어느 것이나 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제의 답을 공식이나 어떤 계산에서 착오가 있어 답을 구하지 못하고 쩔쩔 매거나 더 나아가서는 인생을 포기해야할 극단의 처지에 빠지기도 합니다. 구원의 문제나 이방인이 바라는 현실의 행복을 위한 갈망의 문제이거나 어떤 문제가 혹은 사고가 터질 때 거기에는 분명 해결의 문제가 있습니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먼저 그 문제를 제시한 문의자의 의중을 잘 파악해 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의중을 알기전에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나 얄팍한 지식으 로 해결하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헛되고 헛된 것이 분명 우리의 인간사가 아닙니 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보람된 것이 우리네의 인간사입니까? 유와 무의 글짜 수는 단 한자로 같습니다. 그러나 유와 무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천재와 둔재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하는데 백지 한 장의 차이라는 것은 달콤 한 미사여구 입니다. 백지 한장으로 눈을 가려보십시요. 세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누가 어떤 문제를 주었는지는 몰라도 출 제자는 어떤 고통이나 고민하지 않는 문제는 주지 않습니다. 물론 답은 있습니다. 그 답을 푸는 열쇠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주었으니 답을 달라고요? 그건 너무 안일 한 주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자기가 죽도록 노력하고 연구하다가 포기할 무렵에 야 해결의 실마리를 줍니다. 죽기까지 노력해서 풀어야만 합니다. 스스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풀지 못하고 포기할 무렵에야 그 답을 가르쳐 줍니다. 답을 달라기 보다는 답을 구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성도가 마땅히 해야할 숙제요, 의무라고 생 각합니다. 내게 문제를 주셨으니 제가 그 문제를 기어히 풀어보겠나이다 라는 각오로 전진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어떨까요? 나부터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