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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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할렐루야2024-11-22 03:04
작성자 Level 10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3] 본문말씀 : 요한3서 1:1~4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바로 살았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생활이었는가, 나를 기쁘게 하는 생활이었는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았다고 한다면 잘 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헛되게 산 것입니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생활입니다. 지금의 시간이 후에는 영원한 망각으로 빠져버리듯이 오늘 하루의 삶도 우리의 추억에서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았다고 한다면 시간은 영원히 흘러가버리지만 그 시간을 산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최상의 목표입니다. 고린도서를 보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존재하던 주후 1, 2세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첫 사랑, 첫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랑이 매우 순수했고 뜨거웠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하는 것이 최상의 과제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라면 결혼도 포기할 수 있었고, 이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짐승에게도 던질 수 있었고, 자기의 모든 재산도 송두리째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신앙은 순수하고 뜨거웠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것이 방해된다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자신의 젊음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칭찬하고 권고하면서 고린도전서 7장에 이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생활에 방해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지상과제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가이오라는 제자에게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3절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라고 했고 4절에서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사도 요한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지 생각할 때에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였느냐’ 하는 점을 검토하면 됩니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진리라는 말을 사용할 때 어려운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실질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삶의 도리를 진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쉽게 표현하면 배운 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진리는 행하는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마치 머릿속에 담아놓는 지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리는 삶 그 자체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진리는 죽은 진리요, 사치스러운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진리는 머리에 담아두는 진리가 아니라 마음에 담아두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마음 속에 가득히 차면 그 다음에는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는 진리는 마음을 채웁니다. 마음이 가득히 차면 자기도 모르게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이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하나님처럼 행동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배우고 받았다면 분명히 하나님처럼 생각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행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요, 배운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와 같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한국교회가 기도가 부족해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 실패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훈련을 많이 받는다 해도 그 삶이 배운 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하면 흔히들 완벽하게 무엇인가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철저하게 살아야 진리 안에서 살고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완벽주의는 어떤 경우에 마귀가 쳐놓은 그물일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 개념에 잡히면 완벽하지 못합니다. 완벽할 수 없다는 그 이유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까지 하지 않는 그런 습관으로 빠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이오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참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이오는 세 명 정도 나타납니다. 요한3서에 나오는 가이오는 성경에 나오는 가이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로마에서 당시 가이오라는 이름은 매우 흔하게 불리던 이름입니다. 여기 있는 가이오가 어떤 인물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이오가 평신도로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진 지도자였다는 것과 생활이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절~8절을 보면 가이오는 나그네를 영접해서 사랑으로 봉사하는 일을 잘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도의 열정이 불타오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동네 저 동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 나그네들을 가이오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정성껏 사랑으로 보살펴서 돌려보내고 했는데 대접받고 돌아온 사람들이 가이오를 칭찬하고 보고했던 것입니다. 그런 작은 일도 충실히 해서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 사도 요한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진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요, 다른 어떤 일면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은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생활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가이오 같이 평범한 사람도, 평범한 한 두 가지 일만 잘해도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가이오에게 배워야 할 것은 상당히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완벽하게 다 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가만히 있지 말고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리 안에서 행한 것이 있으면 찾으십시오. 그것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속에 진실이 있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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