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질병, 은혜 기억상실증
출애굽기에는 ‘원망’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구절이 무려 일곱이나 된다. 물이 없어 목이 마르다고 원망하고, 먹을 게 없어 배고프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왜 우리를 애굽 에서 끌어내셨냐고까지 원망한다. 하나님은 때마다 기적의 은혜로 그들의 필요를 채 워주셨건만 그들의 입에서는 ‘감사’의 기쁨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까맣게 잊어버린 은혜의 기억.. 나의 기억상실증이 또다시 도지고야 말았다. 끈덕지 게 나를 떠나지 않는 이 기억상실증이란 녀석은 대체 언제 치료될까? 도대체 무엇으 로 치료할 수 있을까?
고질병과 불치병의 차이는 ‘노력 여부’라고 했다. 불치병은 아무리 노력해도 고칠 수 없는 병이지만, 고질병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오래 방치한 끝에 결국에는 고치 기 어려운 상태까지 이른 증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 고질병은 치료 노력을 게을리 한, 환자 본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10년을 넘게 끌어온 지독한 고질병이 있다. 매번 깊어지는 병의 증세를 알면 서도 마냥 방치한 끝에 이제는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른 이 병의 이름을 나는 ‘은혜 기 억상실증’이라 명명했다.
이 병의 증세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증세는 내 입에서 ‘감사’를 앗아가고 그 자리에 대신 ‘불평불만’을 채워 넣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말로써 범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통장 잔고는 십 원 단위까지 잘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의 기억은 어쩜 그렇게 잘도 잊어버리는지.. 모 영화의 제목처럼 내 머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만을 골라 지워버리 는 지우개라도 있는 듯 하다.
두 번째 증세는 더더욱 가관이다. 내가 잘 나서 인생을 사는 줄 아는 것이다. 내 능력으로 성공을 이루고 내 능력으로 삶 이 꾸려지는 줄 아는 이 무서운 착각은 나를 점점 더 교만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과 ‘순종’의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진작부터 말씀과 찬양의 병원에 입원해서 깨끗이 치료해야했을 이 병을 10년이 넘도 록 방치해온 내 신앙의 게으름은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럽지만, 재밌는 건 이 병이 비단 나만의 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 은혜 기억 상실증이라는 병 의 역사가 아주 깊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증세부터 찾아보자면,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벗 어난 이스라엘 민족들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역으로 손발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하수에 내던지란다. 이렇게 나날이 심해지는 바로의 횡포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이건만 이스라엘 민족의 입에서는 감사 대신 불평만 터져 나왔다.
출애굽기에는 ‘원망’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구절이 무려 일곱이나 된다. 물이 없어 목이 마르다고 원망하고, 먹을 게 없어 배고프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왜 우리를 애굽 에서 끌어내셨냐고까지 원망한다. 하나님은 때마다 기적의 은혜로 그들의 필요를 채 워주셨건만 그들의 입에서는 ‘감사’의 기쁨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위기와 고통 속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눈앞에 현실에 만 급급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은혜 기억상실증’의 첫 번 째 증세를 발견하였다.
그럼 이번에는 두 번째 증세를 찾아보자. ‘교만’과 ‘자기 자랑’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 이 두 번째 증세는 아주 의외의 인물에게 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바로 히스기야다. 유다의 역대 왕들과는 달리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섬김으로써 천적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굳건히 지켜냈을 뿐 아니라, 통곡의 기도로 수명까지 15년 이나 연장 받은 히스기야.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아는 히스기야였건만, 바벨론 사절단이 찾아왔을 때 자기 자랑과 교만의 늪에 빠져 유다의 군사력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까마 득히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막대한 군사력에 앞서 그 군사력을 일궈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자랑해야했거늘, 잠시 잠깐 ‘은혜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 히스기야는 유다의 부강함이 오직 자신의 능 력으로 성취된 양 들떠서는 국가 기밀인 군기고와 내탕고까지 자랑삼아 공개했던 것 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취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내 능력에 스스로 탄복하고 있는 어리석고 한심한 나에 비하면, 곧바로 반성하고 하나 님의 징계에 순응했던 히스기야는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 자인가?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온 분들이라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그렇게 그 병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 병을 못 고치세요?”
그렇다. 나는 이 병의 증세를 정확하게 알고있다. 그뿐 아니라 이 병을 고쳐야한다는 점도 깊이 깨닫고있다. 그리고 이 병의 원인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앙적 게으 름’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이 병의 원인이었다. 이 글 서두에 썼듯 아무런 치료 없이 계속 방치해 둔 신앙적 게으름이, 오늘 날 은혜 기억상실증을 내 고질병으로 만 들었다고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 병이 고질이 되었던 진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 다. 그 것은 바로 ‘응석’이었다. 꾸지람과 사랑의 매 없이 자란 아이가 버릇이 없듯, 하 나님의 은혜로 평탄한 삶을 살아온 나 역시 하나님 앞에 버릇없는 응석받이였던 것이 다.
불순종과 원망으로 투덜대는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케 하신 하나 님, 잠시 잠깐 자기 자랑에 취했던 히스기야에게 바벨론에 의한 유다 멸망을 선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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