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 하나님과 사탄. 이 용어들은 영적인 용어다. 하지만 요즘
이 영적인 용어들은 어느 새 우리의 신화 속으로 사라져 간지 오래다.
그것은 심지어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영화 콘스탄틴은 이 세상에 천사와 악마의 혼혈종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콘스탄틴이 그 사실이 싫어 자살을 하고 지옥을 다녀오지만 다시 세상에
던져져 악마들을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 꼭 액소시스트를 보는 느낌이다.
- 퇴마사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균형이 깨지며 실제로
악마들이 나타나 나돌기 시작한다. 근데 그 배후에 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뛰어난 영상연출은 칭찬할만하
다. 거기에 스토리 구성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영화적 오락성으로만 본다면
나름대로 볼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오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오늘날의 크리스천으로서 묵과할 수 없는 구석이 상당히 많다.
영상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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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영화는 큰 그림을 그리고 보면 천국과 지옥, 하나님과 사탄, 천사와 악마 등
이런 대립구조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루는 양대산맥처럼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그 균형상태가 깨지지 않는 상태로 가고 있다는
설정이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말이다. 어차피 이 땅에 사탄을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니 악마가 세상 이곳 저곳을 다니는 꼴을 보는 것도 그것이 비성경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영화의 대사 중에 "우리 인간은 결국 그들의 꼭두각시지"라고 한 발언도 수긍
이 가는 내용이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과 하나님의 음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게 된다는 설정 또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여느 영화처럼 이 영화에서도 사탄의 힘이 너무 세다.
영상과 음향의 기술로 인해 증폭되는 영화 속의 악마는 관객들로 하여금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탄의 능력이 무소불위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러한 이미지 형상 때문에 크리스천들
- 특히 자매들, 내가 아는 어떤 자매는 이런 영화를 보면 꿈에 꼭 나타난다고 한다.-
조차도 영향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럴 때 사람들이 나타나는 현상
은 사탄을 진짜로 무서워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거나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다. 분명이 이 세상에 뿌려진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인식해야 하고 또한 그에 정면으로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또한 영화에서는 사탄의 힘이 과장되는 과정에서 - 그렇다
고 사탄이 실제로 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래 봤자 하나님 손바닥이라는
뜻이다. - 나타나는 것이 그의 엄청난 힘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성스런 도구들
이 등장하는데 보면은 별 것들이 다 있다. - 잘 보면 다분히 카톨릭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에이 누가 썼던 물건이 뭐가 중요하냐고! 다 썩어 없어질 것들인데 - 성수, 십
자가, 아예 성물들을 녹여서 만든 총과 총알 등등. 뭐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서 사용했
겠지만 이런 것들로 악마를 몰아내는 수고스러운 행동들은 조금은 안쓰럽다. -그리
고 이것들 대부분은 주술사들의 전승으로 보여진다. - 성경에도 귀신이 분명 나온다.
예수님도 그들을 몰아내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뭘 뿌리거나, 뭘 보여줬다는 기록은 전
혀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한다. - 생각해 보라! 이런 것이 필요했다면 이런 중요
한 물건을 하나도 확보 못한 나 같은 사람은 귀신과 마주쳐도 열나게 맞는 수밖에 없
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그저 명령했을 뿐이었다. 말씀으로 말이다. 그분의 권위가 그
러하기에 충분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뒤에서 조종하는 마귀를 봤을 때도
아주 심하게 호통을 치셨다. 바로 그 분의 이름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
리도 그분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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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기억 나는 것 -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은 콘스탄틴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마지막에 자살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
황당무게 한 설정이 조금은 일리 있어지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
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도 신학적
인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어 확실히 어느 쪽으로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가 양쪽
동맥을 끊고 피를 흘리면서 - 사실 이 부분에서 콘스탄틴이 하나님께 한번만 더 기회
를 달라고 하는데 이것은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이 생각나기도 한다.- 드디어 악마들
의 두목 루시퍼가 나타난다.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다. 인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콘스탄틴. 그리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루시퍼. 아
~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골고다 언덕에서 봤다. 인간의
죄악을 위해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님. 그것을 죄 많은 인간 콘스탄틴과 빗대다니! 그
가 죄를 많이 지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었
으면 천국에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
은 한 점 죄가 없는 순전한 양이라는 사실이다. 죄인이 남의 죄를 대속할 수는 없기 때
문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여기서 루시퍼는 결국 콘스탄틴을 지옥으로 끌고 가
지 못한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기는데, "자기희생." 언뜻 생각하면 어 그럴 수도 있겠
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자기희생이라는 것 또한 행위의 영역이니 함정에 빠지
지 말아야 한다.
가브리엘의 설정도 눈여겨볼만하다. 여기서 가브리엘은 사탄의 아들을 불러오는 역할
을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인간들이 이 땅에 살면서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모함하고,
이간질하고, 등등의 온갖 죄는 다 저지르지만 예수님 믿고 회개만 하면 천국에 간다
는 이 사실이 너무도 못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사탄의 아들을 풀어놓아서 고통을 겪
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황당무게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빽으
로 대충 살려는 나태함을 버려야 할 것은 건질만하다. 그렇다고 가브리엘의 타락을 설
정하는 것은 너무했다.
모든 악마를 몰아내고 세상의 균형을 이룬 콘스탄틴은 이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다. 비록 세상이 악하게 보일지라도, 사탄이 활개치고 다니는 것 같을지라도 그것 또
한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을 진실로 믿게 된다. - 영화에서
는 그 부분 설정을 콘스탄틴이 담배를 끊고 껌을 씹는다. 서양에서도 담배가 별로 좋
은 기호식품이 아니라는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세상이 갈
수록 악화되는 것은 왜냐고, 왜 아프리카에서는 그렇게 굶어 죽어 가냐고 반 기독교
진영에서는 오랫동안 외쳐왔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성경에도 예견된 것들일 뿐더러
이 시간도 하나님은 늘 움직이고 계시다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우리 기
독교인들을 사용하시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그분
의 섭리 하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많은 비 성경적 요소가 섞여 있는 이 영화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영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오늘 날 실용주의와 물질주의 그리
고 과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 등 영적 존재들을 성경 속에
가둬 버렸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의식 속에서 특별히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
도 문제이지만 아주 무시해버리는 것도 우리의 삶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사탄을
비롯한 그의 졸개들)은 우리를 무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 우리 또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삶에 대한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영적인 통찰력을 업그
레이드 시켜야 할 것이다. 이 순간도 그들은 우리를 노리고 있다.
글 : 김도형 객원기자 / 200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