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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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펀글) 빌라도의 손(진중권)2024-11-19 05:36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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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났습니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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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빌라도의 손

수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과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수사학이 필수적인
교양. 왜냐하면 정치적 결정도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이루어지고, 법정에서의 판결도 소
송 당사자들의 논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 수사학은 말로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 그
럼 헤브라이 문명에서는 '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을까? 신약성서에는 그리
스로마 헬레니즘의 수사학과 유태의 헤브라이즘의 수사학이 충돌하는 장면이 등장.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장면. 빌라도는 고대 수사학의 전통에
따라 예수의 죄목을 나열한 후, 피고인 예수가 자신을 논리적으로 변론하기를 기다린
다. 하지만 예수는 빌라도가 제시하는 게임규칙에 따라 놀려고 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기를 변론하기를 포기해 버린다. 한 마디로 빌라도의 논증은 인간적이고, 예수의 반
론은 신적인 것.

여기에 빌라도는 당황하고 감탄하여 그를 보며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혹은 대
단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대개의 경우 용서를 빌거나 자신을 변명하는 데에 반해,
예수는 거기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신이 자신에게 준
쓴 잔으로 받아들였기 때문. 이렇게 예수가 스스로 변론을 포기했고, 따라서 빌라도로
서도 예수를 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에서 빌라도는 죄인으로 간주된다. 그의 손에 묻은 예수의 피를
물로 씻어낼 수는 없었던 것. 빌라도로서는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죄가 없다는 것
을 알면서도 예수를 유태인들의 손에 넘겨준 것은 자기의 윤리적 의무를 져버리고, 예
수의 살해에 사실상 가담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 그리하여 빌라도가 예수를 유대
인들의 손에 넘긴 데에 대해 신은 그 도덕적인 책임을 물었던 것.


2.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라크 파병 결정. 어쩌면 우리의 죄는 빌라도보다 더 심하다. 우리는 그
저 이라크인의 생명을 부시의 손에 넘겨준 게 아니라 거기에 적극 가담했기 때문이
다. 이번 전쟁은 아무 명분도 없고, 때문에 전세계의 반대에 부딪혀 있는 상태. 그럼에
도 불구하고 미국, 영국, 스페인의 침략자들은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살해하려고 획책
하고 있음. 이라크인들이 흘릴 피를 우리 손에 묻히게 된 것.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 어느 방송사 뉴스에서 "의외"라고 할
정도로 전폭적인 수용.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는 "한미 관계를 대등하게 끌어올
리겠다"고 말하며 표를 모았던 분. 그런데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은 사실상 이회
창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거나, 어쩌면 더 나아간 것.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 중립의 여지는 있는 법. 그런데 아무런 저항의 흔적도, 협상
의 노력도 없는 완벽하게 일방적인 수용. 게다가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한 부시 대통
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발언. 그런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부시가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라고는 오직 전쟁 밖에 없다. 고로 노무현 대통령은
그 발언으로써 부시의 전쟁을 찬양한 셈. 우리는 이로써 손에 이라크 민중들의 피를
묻히게 된 것. 언젠가 역사는 우리에게 이 책임을 물을 것.


3. 왜 전쟁의 끔찍함을 모르는가?

이라크 전쟁과 뒤이은 경제봉쇄를 통해 죽은 이라크인들의 참상, 특히 어린이들의 참
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폭격을 맞아 방공호에서 몰사한 사람들의 사진, 의약품 부족으
로 병에 걸려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얼굴들, 그 밖에 여기 저기에서 소위 정밀폭격이라
는 이름의 오폭으로 폭사한 사람들의 모습. 이것을 미디어는 완벽하게 감춘다.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전자오락으로만 체험. 전폭기 조종석의 스크린에 비친 전자오
락. 이게 전쟁이다. 여기에는 찢겨진 인간의 살코기도, 살이 타서 코르크가 되는 냄새
도, 그리고 사람들이 저지르는 비명도 들리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CNN 방송은 완벽
하게 전쟁의 참상을 감춘다.

사람들은 전쟁을 표상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
각. 하긴 상상 속의 전쟁에서 상상하는 주체가 죽을 수는 없지요. 따라서 실제의 전쟁
과 영화 속의 전쟁을 구별하지 못하게 됨. 전쟁 영화의 경우 장면이 스펙터클하면 할
수록 재미가 있다. 그 결과 전쟁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의식을 못하게 된다.


4. 우리의 미디어는 어떤가?

조중동 보수신문들은 파병결정을 환영하는 논조. 일단 한미 동맹을 확인했다고 안도
하는 분위기. 실망스러운 것은 한겨레 신문도 "당당 외교 현실 앞에서 물러나나" 라며
현실적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사설을 실음. 원래 이 신문은 평소에 강한 반전 주장을
펴왔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꼬리를 내리고 현실적 고충 이해론으로 돌아
선 것.

그나마 경향신문은 그래도 분명한 반전의 목소리를 냄. 히지만 이런 목소리는 극소
수. 방송매체에서는 이라크 파병은 거의 의제화되지 않고 단신으로 처리. 베트남 전쟁
을 경험한 나라에서 이렇게 파병에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이상한 일.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별다른 논쟁도 없이 결정되는 것은 기이한 일.

다른 나라 같으면 신문 지면이 아마 파병 찬반 논의로 가득찼을 것. 방송에서는 1차
이라크 전쟁 때 죽은 이라크 국민들의 참상을 보여주어야 하합니다. 아울러 영국과 미
국이 왜 굳이 전쟁을 하려고 하는지 그들의 더러운 속셈을 밝혀주는 특집 프로그램을
내야 합니다. 신문지면에서는 교수와 지식인들이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 결정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5. 전쟁을 찬성하는 논리들

심지어 전쟁 찬성론도 들립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파병은 불가피하다는 논리.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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