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지 않는 음악사역자?! (음악사역에서 기도의 중요성)
1. 시작하는 글
크리스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기도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 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 사역에 있어서도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면 맞는 말일까요? 그래도 음악사역인데 찬양과 음악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물 론, 기도와 찬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만.... 오늘 우리가 성령님의 빛 비추심을 받아서 함께 살펴보 고 나누려고 하는 것은 ;
i) 크리스챤으로서, 동시에 음악 사역자로서 기도를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 는가 ii) 왜 기도가 음악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iii) 중요하게 느끼는 만큼 얼마나 실제로 무릎을 꿇고 있는가
를 돌아보고, 우리의 뻣뻣한 무릎을 주님 앞에 꿇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2. 기도 없이 진정한 음악사역이 가능할까?
찬양 사역자들은 기도를 제일 많이 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 시에 찬양 사역자들에게 기도가 소홀해지기 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 은 찬양과 기도가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보이고, 동시에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실제적인 예를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몹시도 무더웠던 지난 해(... 지난 해 라는 것이 벌써 12년 전.... 90년이네요...^^) 찬 양 캠프의 마지막 날 주강사셨던 전철민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찬양캠 프라고 하니 이 더운 날씨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만약, 기도캠프를 한다 고 광고를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모이겠습니까?" (그 당시 주찬양 캠프의 열기는 정 말 뜨거웠었지요....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모였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면서, '음악'을 통한 사역이 음악 사역이라면, '기도'를 가 지고 사역하는 기도 사역이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리고 전혀 드러나지 않고 뒤에서 기도만하는 '기도 사역자'를 위한 캠프가 열린다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껴서 열광적으로 참여하게 될는지도 궁금했습니 다. (감사하게도, 최근에는 성령님께서 한국 교회 안에 중보기도 사역에 대한 눈을 열 어주셔서, 기도학교, 캠프 같은 것도 종종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찬양과 경 배 학교 쪽보다는 적은 분들이 모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쉬운가 하면 동시에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와의 꾸밈 없는 대화' 이지만, 동시에 '노동' 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어눌하고 간단한 고백도 분명 기도이지만, 우리의 평생을 두고 걸어가야 할 순례의 길 이기도 합니다.
사실, 찬양이 기도를 도와서 함께 좋은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자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홀로 기도할 수 없을 때, 또 기도하기조차 어렵 도록 침체되어 있을 그 때, 찬양을 통해서 예수님의 산소와도 같은 생명을 다시 호흡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음악 사역의 힘과 능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 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일 하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동시에, 우리 쪽에서의 책임이라 는 면에서는, 한마디로 사역자 개인(또는 팀의)의 기도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교통이 없이는 절대로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 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매일 새롭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입니다. 때로는 그분 앞에 조용히 엎드리고, 때로는 적극적인 기도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우기, 대부분의 음악 사역은 여러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 에서 소수의 찬양 사역자가 찬양을 하거나 찬양 집회를 이끌어 가게 됩니다. 어떠한 형태의 사역에서나 기도가 필요하지만,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에서, ‘내밀하 고 은밀한 기도’가 더욱 요구됩니다. 매번의 사역이나 집회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과 사역으로 섬길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도의 시간들은 많은 실제적인 시간들을 필요로 할 뿐 아니 라, 때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 여러 기도의 사람들을 통하여 잘 알려져 있습 니다. (물론 그 고통을 넘어섰을 때, 가장 기쁘고 가슴 벅찬 시간이기도 하지만 말입 니다)
3.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솔직히 음악사역 전반의 주된 분위기는 일견 기도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입 니다. 화려하고, 겉으로 드러나고, 기뻐 뛰는 것이지, 아무래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골방에서 힘을 들여가며 오랜 시간 기도에 골몰해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 입니다.
또 한 가지, 음악사역자가 기도를 멀리하게 되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부족한 주님 과의 교제를 실제 찬양하는 시간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저희 선교단의 사역에서 실제로 경험했던 일입니다: 사역에 임하기 전 무엇보다도 기도하 는 모임을 우선적으로 가졌었는데, 길을 헤메거나 장소사정 등으로 악기를 셋업할 시 간이 부족해지자 겨우 집회시간에 맞춰 기재들을 준비한 후, 기도회를 못한 채 집회 에 임하는 경우들이 생겼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각자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구하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저희를 긍 휼이 여기셔서 우리의 찬양 중에 함께 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경험이 거듭되다보니 악기를 설치하고 기도할 시간이 충분히 남는 경우에도 무엇을 할 지 몰라서 그냥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매일 매일 자 신을 쳐서 십자가에 굴복시키지 않으면 너무도 빨리 나태해지고 방만해지는 우리들 의 약하고 게으른 본성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그 어떠한 의와 공로도 주님 의 일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방해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로서 아버지와 교제하고, 종으로서 주인을 응시하며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 놓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 기도하는 것은 결단코 우리 자신의 의를 쌓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순간순간 머리를 쳐드는 자기 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도입니다.
하지만 별로 주님 앞에 무릎 꿇지 못했는데도 그럭저럭 잘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 니까? 또 많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 같습니까?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의 두가지 이유에서 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의 의와 영광을 위하여 사역자의 인격과는 관계없이 일하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대 로 주의 일을 실컷 감당한 후에 버림받는 비참한 경우(고전 10:27)가 될 가능성이 크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만일 어떤 사역자가 기도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얻 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어디서 그와 그 사역을 위해, 그리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 고 있기 때문이며, 사역의 열매는 기도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4. 기도하는 것만큼만 진정으로 찬양하고 사역할 수 있다!
끊임없는 영혼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가히 전설적인 음악 사역자였던 Keith Green은 간절한 기도 중에 귀한 찬양들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결 한 맘 주시옵소서(Create in me a clean heart)‘ 역시 눈물의 기도 속에 고백했던 곡 이였습니다. 그런 기도와 찬양의 삶 가운데,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마치 사도행 전 시대의 전도자와 같은 열정으로 복음을 위해 살다 주님 앞에 갔습니다. 또 유명한 아티스트 스티브 그린 역시 집회 전 수 시간동안 대화를 금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역자들이 묵상과 기도로 사역을 준비합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거듭되는 사역을 통해 기도 없이 진정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음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즉, '회중 앞에서의 공적으로 찬양할 때의 모습과 능력은 결코 개인적인 찬양 과 기도의 시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중음악의 가수들처럼, 부르고 있는 곡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는 표정과 감정을 연출하는 ‘쇼’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 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는 (시62:8) 개인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 한 것입니다.
내가 회중 앞에서 찬양할 때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찬양드리 는 모습이 일치합니까? 하나님 앞에서보다 회중 앞에서 더 활기차게 느껴지지는 않으 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그 차이만큼 우리는 껍데기로 위장된 찬양을 해왔는지도 모 릅니다.
5. 기도의 삶, 삶의 기도
찬양집회가 힘을 잃어가는 듯하고, 모이는 수가 줄어들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새로움 과 기쁨이 없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새로운 찬양곡들과 음악적인 방법들을 도입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물론 그런 노력들도 필요합니다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예.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바로 여기 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최선, 최고의 답이 되는 것, 누가 이것을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저 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관해서 말하고, 서로 기도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심 지어 자신은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큼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 느 통계에 의하면, 거듭난 크리스찬들이 교회에서 하는 기도를 제외하고 혼자 기도하 는 시간은 하루 평균 2분 미만이라고 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서 사역과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지 모 릅니다.
이젠 말과 머리로가 아니라, 실제로 무릎을 꿇을 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우리들의 삶 과 사역에서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동의하거나 인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기에 짐 그래함이 자신의 책(기도)에서 ‘기도와 개인의 영적 생활과의 관계’에 대해 규정한 것을 음악 사역에 맞추어 수정하여 제시합니다. (그는 이하의 항목들을 수동 적으로 긍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반박해 보라고 했는데, 역시 동일한 제안을 함께 드려봅니다.)
(1) 음악사역자의 영적인 수준은 그의 기도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2) 찬양팀은 팀의 공동적인(=함께 하는) 기도의 수준을 뛰어넘어 사역할 수 없다. (3) 팀의 공동적인 기도생활은 그 팀을 구성하는 개인의 기도 생활의 수준을 뛰어넘 을 수 없다.
이유와 핑계가 무엇이든지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기도가 줄어들고 있다면, 다급한 위 험신호인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찔림이 있다면, 나중으로 기도를 미루지 마 시고 지금 컴퓨터 앞에서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지금 시작해서, 기도가 거룩한 습관이 되도록, 계속되는 삶과 사역에서 무시로 무릎을 꿇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행하는 사역자들이 되기를 간구합시다. 기 도를 통한 진정한 승리를 경험하시길!
이 글은 1991년 주찬양 선교단의 회지에 실렸던 글이라고 합니다.. 강명식 형제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비단 음악 사역자에게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저에게 참.. 감동이 되는 글이라 이렇게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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