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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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사도신경을 왜 고백해야 되나요?2024-10-14 02:20
작성자 Level 10

어떤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앙고백이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
도 있습니다. 세상에 신앙고백이 없는 신자,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
까? 수많은 신앙고백이 있지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신앙고백 = 사도신경', 또는 '사
도신경 = 신앙고백'이라는 잘못된 공식은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기원후 55년 초대교회의 열 두 사도가 각기 한 줄씩 신앙고백의 표현을 만들어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열 두 줄이 아니고
열 네 줄입니다. 100~250년 사이에 저술되었다고 짐작되는 「믿음의 원칙」(Rule
of Faith)이라는 책의 영향을 받아 381년 니케아 종교회의로부터 무언가 만들어 보려
는 시도가 시작되어 724년 지금의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완성되
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탈리아교회의 신앙고백」, 「아프리카교회의 신앙고백」,
「니케아 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 「아시아 신조」등의 내용을 집성한 것입
니다. 그러면 왜 저를 포함한 침례교인들은 사도신경(신조)을 신앙고백문으로 사용
하지 않는가?
첫째, '신앙양심의 자유'라는 성경의 정신에 기초하여, 우리는 '신앙고
백'(Confession)은 인정하나 '신조'(Creed)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조(信條)는 법
적인 강제조항이고, 고백(告白)은 신앙의 자기발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의 내
용과도 다른, 인간들이 제조한 신조에 따라 종교재판을 했던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
하기 때문에 신조를 만들지 않습니다. 신조에 위배되는가 여부가 그의 구원을 결정하
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백이 체험적인가, 성경적인가가 구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종교회의에서 만든 신조들을 정통 교리화한 것이 로마 카톨릭입니다. 이 이유 하나만
으로도 사도신조를 신앙고백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둘째, 로마 카
톨릭의 신조를 굳이 기독교의 고백문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에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표현을 담은 좋은 고백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것들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우리는 '거룩한 카톨릭교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사도신조의 내용을 신앙고백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의 원문은 "I
believe in the Holy Catholic Church."입니다. 여러분은 바티칸을 중심으로 한 범세
계종교인 카톨릭교회를 믿습니까? 기독교에서 이 신조문을 채택할 때 '거룩한 카톨
릭교회'를 '거룩한 공회'로 바꾸었다고 해도 어떻게 개교회의 연합체인 공회가 신앙고
백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넷째, 연옥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
혀 죽으시고, (......),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사이에
있는 문구 하나를 한국어 사도신경에서는 슬쩍 빼버렸습니다. 큰일 날 문구이기 때문
입니다.
찬송가집에 인쇄되어 있는 영어 사도신경을 찾아 보십시오. "He descended into
hell; ......" (지옥(연옥?)에 내려가셨다가, ......) 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 후 부활하실 때까지 그 사이에 지옥에 다녀오신 적이 없습
니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담은 신조문을 신앙고백이라고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로
마카톨릭교회에서 베드로전서 3장 19절을 잘못 사용해서 마치 예수님께서 감옥에 갇
혀 있는 불신자들에게 또 한 번 구원의 기회를 제공한 것 같이 연옥설이라는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표명하는 문구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나 때문에 고난당하
셨지 본디오 빌라도 때문에 고난당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의 입장은 어떤지 모르
지만 '나'의 신앙고백문으로는 적절치 않습니다. 여섯째,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
가 저리로서" 는 성자 하나님의 사역이 재림 때까지는 정지되어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일곱째, 신앙고백이라면 꼭 담아야 할 나 개인이나 교회의 사명
과 선교의 사명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정된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는
행위가 신앙고백으로는 적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역동적이고 다양하신 하나님, 그리
고 그 하나님과 신자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그날 그날의 살아있는 체험적 고백들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성경구절이, 때로는 찬송가 가사가, 때로는 나만의 표현이 나
의 신앙고백이 될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려서부터 암송해서 습관적으로 지금
도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이라고 발음하고 있다면 반드시 태도를 고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수많은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목산교회에도 수많은 신앙고백이 있습
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세계에는 성경책을 경전으로 사용하는 종교가 모두 네 개가 있습니다. 기독교, 로마
카톨릭교, 유대교, 이슬람교. 이 네 종교는 서로 다른 종교입니다. 같은 신앙의 다른
교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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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이런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가 왜 신앙고백을 사도신경으로
해야하는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구원관이 더 필요하지 않은지요?

그리고 또 구역예배처럼 목회자(목사님)이 안 계신 곳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는 꼭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내시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기도를 할 수도 있는것이고
아니면 다른 이를 위한 중보기도로서 예배를 마칠 수 있는게 아닐련지요.

목사님 의 답변 꼭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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